본문 바로가기
생활정보

찜닭과 튀김은 어떤 요리인가?

by 크라톤 2017. 3. 25.
반응형


닭고기 요리의 한 종류로 안동찜닭을 줄여 흔히 찜닭이라 부른다. 안동찜닭의 기원에는 여러가지 주장이 있다. 첫 번째 주장은, 조선시대에 사대부·양반 및 부유한 계층은 사대문 안쪽에 살았고 평민 같은 가난한 계층은 사대문 바깥쪽에 살아, 사대문 안쪽을 안동네,바깥쪽을 바깥동네라고 불렀는데, 도성 안쪽 사람들이 특별한날 닭을 쪄먹는 것을 일컬어 안동네찜닭이라고 부르던 것이 안동찜닭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다른 주장은, 1980년대 안동구시장 닭골목의 한 음식점에서 손님들의 요구대로 음식에 여러가지 재료를 넣다보니 찜닭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가장 설득력있는 주장은 안동구시장 닭골목 상인들이 서양식 프라이드 치킨점의 확장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닭요리를 개량해 안동찜닭을 개발해내었다는 주장이다. 한국인의 밥상 192회 초반부를 보면 찜닭의 원형을 볼 수 있다. 지금처럼 당면이 들어간 찜닭은 아마도 가격대비 양을 늘려 푸짐하게 보이려는 목적에 당면을 넣었다고 보는게 맞는듯. 그리하여 찜닭의 기원은 본래부터 내려오던 전통음식을 개량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게된 것은 대략 2000년대 중반경부터이다. 2000년대 초반의 불닭 열풍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으면서 우후죽순으로 서울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가 크게 흥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 예전만큼의 인기는 없지만 불닭이 번화가 몇 곳을 빼고는 찾아보기 힘들만큼 사라진 것에 비해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족발, 보쌈 등에는 다소 밀리는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찾는 사람이 꾸준히 있어 도시의 야식 배달 책자에는 찜닭 메뉴가 꼭 들어가 있을 정도이다. 닭고기에 다양한 채소를 비롯해 당면이 들어가는데다가 남은 국물에 밥을 비벼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닭 한마리로 하는 요리 중 가장 푸짐한 양을 자랑하는 음식이다. 예전엔 저렴한 음식에 속했지만 요즘엔 찜닭 하나에 2~3만원쯤은 하니 이젠 저렴한 음식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왔을 때 가장 평이 좋은 음식이기도 하다. 달콤 짭쪼름하면서도 담백한 소스가 닭을 비롯해 들어간 모든 재료에 진하게 베어들었고, 오랜 시간 강한 불에서 닭을 조리하였기 때문에 육질도 매우 부드럽다. 간혹 청양고추를 많이 넣어 매운 찜닭도 있다. 하지만 원래는 이 매운 쪽이 오리지널. 현재의 단맛이 강한 것은 서울 사람의 입맛에 맞춰 변형된 것으로, 안동 찜닭골목 본고장에서 먹어보면 상당히 매콤한 편이다. 집에서 해먹기엔 까다로운 요리 중 하나다. 재료가 다양하기도 하지만, 그 특유의 맛을 내기가 좀 어렵기 때문이다. 맛도 맛이지만 그냥 닭 넣고 감자 넣고 양념 넣고 끓이면 된다고라고 생각할 경우 미처 잡지 못한 닭비린내에 입도 못 대고 버리는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 집에서 해먹을 거라면 아래의 레시피를 완벽히 따르지 않더라도, 꼭 검증된 방법으로 비린내만큼은 잡도록 하자. 고기나 생선, 야채 등 식재료를 끓는 기름에 넣고 단시간에 익혀낸 음식이다. 밀가루와 계란 등으로 만든 튀김옷을 입혀서 튀기는 경우도 있고 빵가루를 겉에 입혀 튀기거나 그냥 재료 그대로 튀기는 경우도 있다. 튀김옷이 고온의 기름과 만나 신묘한 화학적 반응을 거치면 식감이 바삭해지고 고소해지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는다. 단, 튀겨낼 때 기름의 질이 맛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오래된 기름을 써서 튀긴 음식은 바삭하지도 않고 튀김옷이 눅눅하다. 또한 고칼로리라는 것이 문제이다. 때문에 요즘은 빵가루를 입히는 종류의 튀김에 한해 기름을 살짝 바르고 오븐에 굽는 방법도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기름에 담궈 튀기는 것보다 균일하게 열과 기름이 가해지지 않기 때문에 고소함과 바삭함이 부족하며 색도 고르지 못하다. 적당히 사용한 기름이나 상온에서 고형인 지방이 맛을 좋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요즘처럼 건강 문제 생기기 전에는 어느 정도 사용한 기름을 쓰는 것이 더 바삭한 튀김을 만드는 노하우였고, 쇼트닝 같은 고체 기름을 감자 튀김에 쓰던 맥도날드가 액상 식용유로 전부 교체하면서 감자튀김이 맛이 없어졌다, 롯데리아와 동급이 되었다는 평이 많다. 튀김옷의 경우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일단 재료에 밀가루를 묻히는 것은 비슷하다. 현대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서양식 튀김의 경우 기본적으로 밀가루,계란,빵 순서대로 튀김옷을 입힌 뒤 기름에 튀기고, 옥수수가루를 밀가루 다음에 입혀 고소함을 추가하기도 한다. 튀김옷을 만들 때 주의할 점은 가급적 찬물에 반죽하고 오래 반죽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오래 반죽하면 글루텐이 형성되어 바삭한 맛이 없어진다. 튀김는 기름의 온도는 요리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180℃ 전후이다. 너무 온도가 낮으면 튀김옷이 익기 전에 먼저 기름부터 푹 흡수해서 바삭하지 않고 눅눅한데다 기름기만 엄청나게 되고, 높으면 조리시간이 너무 짧아져 속까지 열이 전달될 시간이 모자라 안이 설익는다. 그렇다 보니 가정에서 소량의 기름을 써서 가스레인지로 하기에는 좀 귀찮은 감이 있다. 핫플레이트는 튄 기름을 닦긴 쉽지만 온도 유연성이 떨어져서 튀김으로는 최악이다. 하기는 쉽지만 잘하기는 어려운 요리법이다. 기름에 튀기기만 하는데 어려운 이유는 온도 조절만 해야하는게 아니라 그날그날 온도와 습도에 따라서 튀겨지는 정도가 다르고 재료마다 적정 온도가 다르다. 맛의 달인에서는 눈보다 귀가 좋아야하고 경험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음식으로 여긴다. 일식에서도 꽤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요리법으로 고급 튀김일 수록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분식집에서 파는 튀김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경우엔 튀김 고유의 바삭함이 사라지는 부작용이 생겨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까 친구들하고 튀김을 먹을 때 떡볶이 국물에 튀김을 섞고 싶으면 그냥 자신이 먹을 튀김을 일일히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는게 좋다. 예전 마린블루스에는 성게군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튀김을 아줌마 마음대로 떡볶이 국물에 섞어줘서 아쉬웠지만 소심해서 아무런 말도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비단 떡볶이 뿐만 아니라 소스를 제공하는 튀김 요리라면 발생하는 취향의 문제로 가장 잘 알려졌으며 가장 처음에 논쟁이 벌어진 예는 탕수육의 부먹 vs. 찍먹 논쟁. 해당 항목 참조. 탕수육 같이 소스를 입히는 튀김 요리라면 튀김옷의 바삭함을 유지하며 소스를 잘 베어들게 하는 것도 조리의 기술이다. 여담이지만 요리왕 비룡에서는 튀길 재료를 두부 피막으로 싸서 튀기는 방법으로 바삭하면서 속은 촉촉하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만큼 바삭함과 촉촉함을 양립시키기 어렵다는 얘기이다개인이 만들면 비싸고 단체가 만들면 저렴한 조리법이기도 하다. 이유는 기름값. 개인이 만들면 먹을 만큼 튀기고 기름을 폐기하지만 튀김기름은 제법 수명이 길다. 게다가 물보다 높은 온도에서 빠른 조리가 가능하기에 개인 가정요리보단 단체 급식에서 자주 보인다. 1853년 뉴욕의 Saratoga Springs라는 레스토랑 주방장이었던 조지 크럼(George Crum,1828~1914)은 어느날 어떤 손님이 크럼이 만든 감자튀김이 너무 두꺼워서 설익었다면서 몇 번이고 퇴짜를 놓자, 이에 열이 받아 아예 포크로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얇고 바삭하게 만들어 소금을 왕창 뿌린 감자튀김을 내놓았다. 그런데 손님을 골탕먹이려던 크럼의 의도와 달리 손님은 그 얇은 감자튀김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고, 이것을 계기로 이 얇은 감자튀김이 Saratoga Chip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메뉴가 되어 팔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감자칩이다. 그런데 이 크럼은 성격이 불같아서 손님이 뭐라고 하면 먹을 수 없는 괴이한 음식으로 마개조하여 억지로 먹이고 껄껄 웃던 괴짜였다. 게다가 흑인과 북미 원주민(어머니) 혼혈 출신. 당시 흑인 대다수가 노예거나 노예가 아니라도 사람 취급받기 힘들었던 시절(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이 발표된 게 1863년)이고 노예제가 없던 주조차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가득하던 시대에 이런 짓을 하면서 레스토랑을 운영했으니 그리 장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토가 칩이 대박을 거두면서 그야말로 인생역전을 하여, 떼돈을 버는 것은 물론 나중엔 자기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도 여럿 가지며 부자로 살다가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여담으로 그는 아내가 무려 5명이나 되었는데 아내들을 거저로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하느라 결혼을 많이 했다는 일화가 있다. 최초의 감자칩이 세상에 알려진 당시에는 숙련된 요리사만이 만들 수 있는, 요리사의 실력을 재는 용도로도 이용되었지만, 현재는 요리도구의 발달로 대중적인 감자칩이 되었다고. 대중적으로 대량생산되어 팔린 것이 1908년 Leominster Potato Chip Company 가 시초라는 설도 있으며, 1910년 Mike-sell's Potato Chip Company가 시초라는 설도 있는데 두 회사 모두 서로가 원조라고 주장한다. 당시에는 왁스 페이퍼를 포장 재료로 사용했다 한다. 또한 이때까지만 해도 시중에 판매되는 감자칩은 소금조차 치지 않은 형태였으며, 1920년 이후로 영국의 Smiths Potato Crisps Company에서 칩 안에 소금을 넣은 작은 종이봉지를 동봉하여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우리가 현재 먹는 형태의 간이 된 감자칩은 1950년 아일랜드의 Tayto라는 회사의 사장 조 머피(Joe "Spud" Murphy, 1923–2001)가 사원이던 시무스 버크와 합작으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감자칩 제조 공정 중 간을 하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생겨났다.


반응형

댓글